[과학칼럼] 알파고가 그래서 뭐 - 인간의 오만함과 인공지능
애플래시의 이야기/잡설그런데 저는 이 상황을 다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인공지능이 이러다가 세상을 지배하는 게 아니냐"는 극단적인 의견, 또는 "인공지능이 바둑까지 지배하다니 놀랍다"며 경탄하는 말들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바둑은 아주 어려운 게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우의 수가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게임 중 오목이 있습니다. 오목은 동네 룰을 적용해도, 조금 더 엄격한 렌주룰을 적용해도 흑에게 필승법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체스나 장기, 바둑은 오목보다 조금 더 복잡한 게임입니다. 그러나 체스 역시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긴 지 오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바둑만큼은 컴퓨터가 사람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글쎄요, 저는 굉장히 오만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대부분의 수학적 게임에는 필승법이 존재합니다. 다음 조건이 만족되면 말입니다.
1. 언젠가 끝이 난다.
2. 추상전략게임일 것(운이 작용하지 않고, 모든 전략이 오픈되어 있다).
3. 비김이 없다.
간단히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게임이 언젠가 끝이 나고, 승부에 운이 개입하지 않고, 비기는 경우가 없으므로 어떤 전략은 선에게 필승이거나, 선에게 필승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선에게 필승전략이 있거나, 필승전략이 없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선에게 필승전략이 있다면 증명은 끝납니다. 선에게 필승전략이 없다면, 그것은 선이 어떤 전략을 취하던지 선이 지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바꿔 말하면, 후에게 필승전략이 존재합니다. 결과적으로 선이든 후든 어느 한쪽은 필승전략이 있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오목은 흑(선)이 필승이었고, 체스나 장기는 말 움직임을 되돌리는 수가 가능하니까 후공이 필승인건 이상해서 선공이 필승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바둑의 경우 선공의 유리함을 덮어주는 "덤"이 있기 때문에 어느쪽이 필승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넘어 어딘가에는 필승법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일은 경우의 수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종합적인 판단을 통해 전략을 세우는 일을 잘 합니다. 컴퓨터는 많은 계산을 빠르게 수행하는 것을 잘 합니다. 보드게임의 경우 전략을 세우는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경우의 수를 탐색하는 문제였던 겁니다. 결국 컴퓨터가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면 끝나는 문제였던 겁니다. 그런데 바둑의 경우 그걸 다 계산하려면 우주의 나이 이상이 걸립니다. 결국 개발자들은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무식한 방법"에서 벗어납니다. 몇 수 앞까지의 상황을 미리 계산하여 말도 안 되는 수많은 수들을 미리 솎아내고, 프로기사들의 기보를 참고하여 가능성이 있는 수들을 다시 골라냅니다. 그리고 나서 아주 좁혀진 경우의 수를 그 계산 능력으로 계산합니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과의 대국을 통해 알고리즘을 개선시킵니다. 이것을 "딥 러닝"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이 방법을 통해 알파고가 필승법을 찾지는 못했지만, 최고수를 이길 정도로 좋은 전략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제가 이번 대국을 보며 놀란 점은, 벌써 사람들이 이 정도로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컴퓨터가 바둑에서 인간을 이기려면 2016년보다는 10년쯤 더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상 외로 빨리 그 날이 다가와서, 구글의 기술력에 놀랐다고나 할까요. 결과적으로 바둑은 인간만이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의 오만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가지는 오만한 생각은 하나가 더 있습니다. 제가 알파고 관련 기사에서 본 댓글인데요, "인공지능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컴퓨터 프로그램일 뿐, 스스로 판단할 수도 없고 감정을 가질 수도 없다."는 내용이 골자였습니다. 글쎄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개념 중 하나가 커넥텀(connectome)입니다. 간단히 말해 뇌의 신경세포들의 연결구조를 지칭하는 표현인데요, 자세한 것은 아이와이어(http://eyewire.org/)(신경세포의 연결을 매핑하는 게임으로, 실제 대중연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꽤 재미있습니다.)를 해보시거나, 아이와이어를 개발한 연구소의 세바스찬 승 교수님의 "I am my connectome."이라는 TED 강의를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커넥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어떤 흥미로운 실험 때문입니다. 현재 커넥텀이 완전히 밝혀진 종은 예쁜꼬마선충(300여개의 신경세포만을 가진다고 합니다)뿐입니다. 커넥텀이 밝혀진 뒤, 과학자들은 그 커넥텀의 연결 정보를 프로그램으로 짠 뒤 간단한 레고같은(?) 로봇에 연결했습니다. 감각 기관은 디지털 센서로, 운동 기관은 바퀴와 같은 동력에 연결했습니다. 프로그램 자체는 신경의 연결 정보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연히 사람이 해독할 수 없는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로봇을 작동시킨 순간, 로봇은 마치 작은 벌레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벽을 만나면 잠시 멈추고 뒤로 돌아가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마치 예쁜꼬마선충의 영혼이 로봇에 들어간 것처럼요. 프로그램이 "생각"을 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만약 용량이나 속도의 한계를 뛰어넘어, 언젠가 사람의 커넥텀을 프로그램으로 구현한다면 사람과 정확히 똑같이 움직이는 인공지능이 만들어집니다. 당연히 현재 기술로든 무리이고, 앞으로 수십 년동안에도 무리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인공지능이 감정과 생각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창의성을 가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고요. 사실 감정과 창의성을 구현하기 위해 인간의 커넥텀을 다 복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알파고가 필승전략 대신 적당히 효율적인 근사전략을 찾았듯이, 적당한 근사와 계산을 통해 커넥텀의 일부만을 구현하여 원하는 기능만을 구현하는 것도 언젠가는 가능하리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그도 그럴것이 감정의 구현을 위해서 사람의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구현할 필요는 없을 거 아니에요? 사실 이런 분야는 저도 잘 몰라서 확신은 못합니다.). 이런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적어도 예쁜꼬마선충 로봇은, 스스로 "판단"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의 오만함이 하나 더 깨지는 순간이네요.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발전할 것이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먼 미래의 일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인공지능 연구는 예상보다 놀라운 결과를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는 인공지능에 대해 막연한 편견을 갖고 선을 긋거나, 인공지능을 두려워하기만 하기보다는 그 기술이 악용되지 않고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항상 경계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알파고에 대해 마지막으로 말하자면, 알파고는 확실히 그렇게 강한 인공지능도 아니고, 바둑은 언젠간 컴퓨터에게 정복될 게임이었다는 것입니다. 벌써 두려워하는 것은 기우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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